2014년 3월 22일 토요일

2014.3.22 최종정리 PBS (행16:22-34)

2014.3.22 최종정리 PBS

A. 사도행전 16:22-34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2 The crowd joined in the attack against Paul and Silas, and the magistrates ordered them to be stripped and beaten.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3 After they had been severely flogged, they were thrown into prison, and the jailer was commanded to guard them carefully.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4 Upon receiving such orders, he put them in the inner cell and fastened their feet in the stocks.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5 About midnight Paul and Silas were praying and singing hymns to God, and the other prisoners were listening to them.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6 Suddenly there was such a violent earthquake that the foundations of the prison were shaken. At once all the prison doors flew open, and everybody's chains came loose.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7 The jailer woke up, and when he saw the prison doors open, he drew his sword and was about to kill himself because he thought the prisoners had escaped.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8 But Paul shouted, "Don't harm yourself! We are all here!"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29 The jailer called for lights, rushed in and fell trembling before Paul and Silas.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0 He then brought them out and asked, 'Sirs, what must I do to be saved?'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1 They replie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you and your household.'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2 Then they spoke the word of the Lord to him and to all the others in his house.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3 At that hour of the night the jailer took them and washed their wounds; then immediately he and all his family were baptized.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4 The jailer brought them into his house and set a meal before them; he was filled with joy because he had come to believe in God-he and his whole family.


B. 본문 나누기
22~24: 바울과 실라가 고난을 당함
25~26: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본 바울과 실라
27~29: 하나님의 사람답게 행동한 바울과 실라
30~31: 구원에 대한 메세지


C. 관련 자료 정리
1. 실라에 관한 기록 - 사도행전 15장
실라는 바울과 함께 2차 전도여행을 한 사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방인 교회의에 불순을 섞인 복음을 제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의 이방인 교회를 바사바 유다와 함께 방문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실력있는 자로 회중들의 리더로, 당시의 교회를 성령과 지혜로 이끌어 나갔다.
마가가 바나바를 선택하였다면, 실라는 바울이 동역자로 선택한 자로, 리더다운 은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청된다. 또한, 그는 로마 시민권자였음을 엿볼 수 있다. 바울만큼이나 헬라어에 능통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베드로의 편지를 대필한 실루아노가 실라와 동일인이라는 추청도 있다.
실라가 바울의 동역자로 오늘 본문의 2차 전도여행에 함께한 것은 그의 이러한 능력과 배경이 전도여행에서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2. 바울과 실라의 로마 시민권을 가진 근원에 대한 추청
바울은 자기를 심리하던 천부장에게 자기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고 말한다.(행 16:37, 22:26-27 참조). 이러한 기사는 바울의 부친(또는 조부)이 바울을 낳기 전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원래 로마 시민권은 "로마 본토"에서 태어난 자유민에게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후에 로마의 영토가 지중해 지역으로 확장되면서 로마 본토 출생이 아닌 사람에게도 로마 시민권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바울이 태어난 길리기아의 다소는 주전 1세기에 두 명의 로마 장군(폼페이와 안토니우스)에 의해 다스려졌고, 로마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수여하는 대권은 바로 이 두 장군의 권한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아마도 바울의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가 이때에 로마를 위해서 눈부신 공헌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바울의 직업이 천막을 만드는 것이었던 점을 생각하여, 바울의 부친(또는 조부)이 전투하는 군사들의 장막을 만들어 지방 총독에게 크게 도움을 주었을 것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추측에 불과하며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나타나는 증거는 없으며, 아마도 바울의 부친이나 조부는 바울의 출생 당시에 길리기아 다소에서 엘리트 계층을 이루고 있던 극소수의 계층에 속했을 것으로 추청한다. 그리고 그들은 특별한 공로로 인해 로마 시민권을 획득했고, 이로 인해 바울이 출생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실은 어느 곳에서도 확증할만한 기록은 발견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D. 성경 내용 묵상 및 정리
1.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찬양한 바울과 실라
바울과 실라는 매질을 당하는 고난을 겪었다. 그 고난이라는 것 자체가 주어진 원인을 생각해 보면 이는 상당히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별하게 그들은 달리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 로마에서야 기독교를 핍박하던 시절이었으니 이를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바울과 실라 모두 로마 시민권자였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는 상당히 로마의 법이 불합리하게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역시도 동일한 불합리가 존재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어찌되었든 로마 시민권자가 아니었다.
점차 복음이 퍼져나간 것을 확인할 수도 있으며, 로마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이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로마 시민권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나간 것임을 추청한다. 이는 결국 로마가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상황까지 간 것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바울과 실라는 이런 정당함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불합리의 극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매질을 인내했다. 물론, 잡혀가서 맞는 것에 어떻게 회피가 있겠냐만,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가 겪게 되는 것이 결코 정당하게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때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믿음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탈출할 수 있을 때도 떠나지 않은 바울과 실라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감옥이 무너져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들이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떠나면 그 간수들은 로마법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두 가지 모두를 얻은 것인지 모른다.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고,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써 그 이방인 역시 복음을 전한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의로운 모습에 대해 의롭게 대할 수 있는 그 모습을 배워야 할 것이다.

3. 복음을 전한 바울
바울은 뛰어난 사람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역사하심을 믿는 가운데, 이를 대수롭지 않게 대의를 향해 움직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교회를 세우는 일과 전도여행이 대의라면 단 한 두명의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는 건 상대적으로 하찮고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습을 보인 것은 말 그대로 그가 복음에 충실했다는 반증이 된다고 본다. 복음은 모든 이에게 구원이 된다 하였고, 간수가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흔히 발생하게 되는 일이라고 본다. 큰 일이라는 이름 아래서 사소한 것을 놓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울과 실라도 이 부분에 대한 상황에 직면했고, 이를 잘 극복했음을 말할 필요가 없다. 

E. 개인 묵상 및 정리
1. 내 삶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세
살다보면 부당한 일이 많은 게 인생이고 삶이다. 특히 사회 생활은 그렇다.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하다 못해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직 초년생이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마음은 조급하기 마련이고, 갈 길은 먼게 보이는데 내게 정당하지 않은 일이 자꾸 일어나는 걸 느낄 때 참 그런 것을 느낀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서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마저 꺾이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래도 하나님 앞에 살아가려는 내 자세가 어떠한지는 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아무리 열심히 할수록 나는 나선회랑 처럼 사회에 매여가는 것 같다. 그 안에 적당한 욕심과 그 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하루에 잠언 1장씩 읽는 것부터 제대로 시작하고자 한다.

2. 나 개인의 믿음에 대한 회의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 믿음은 어디로 가는지 돌아보게 되곤 한다. 이건 사실 내 생활에만 매여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주변에서 돌아가는 것이 모두 그렇다. 내가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 정확한다는 확신은 없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이건 내 삶 속에서 믿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일을 겪으면서 더더욱 그렇다.
내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한 회의는 언제나 하곤 한다. 그러나 이게 맞는 고민인지에 대해서도 혼란스럽다. 세상이 다 그렇게 가는데, 내가 그냥 그게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생각이 많고, 솔직한 내 입장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하겠다. 그렇다고 차분하게 바라보자는 말 역시 하고 싶지 않고, 그냥 내가 느끼는 게 문제가 있을수도 있다는 것을 표현하거나 안하거나 하고 싶지 않다.


F. 관련 LT 말씀
균열을 통해서 영원의 빛이 삶에 비치게 되다.  간수장은 작금의 상황에 큰 절망을 느끼고 자결을 하려 한다. 그 때에 구원에 대한 갈망을 찾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을 내려놓게 되고 잠잠히 묵상하게 되는 순간에 구원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간수가 구원에 대해 질문하는 이 상황은 전후 사정을 놓고 찾아보면 사실 느닷없이 발생하는 상황일 수 잇다. 이는 결코 가볍게 던져진 질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그 순간에 한 질문이 어찌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절규하며 내뱉은 질문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는가? 개인의 의지로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부터가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보이는 존재여야 한다. 이미 개인의 의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죽은 것이다.
죄의 본질이 무엇일까? 죄는 어떠한 행동이 아닌, 그저 그 영향력 안에서 살아가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 안에서 어떻게 과연 거룩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날마다 절망해야 한다. 그 절망 가운데서 구원의 빛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절망 가운데서 구원에 대한 열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영적인 본능과 그 빛을 위해 날마다 죽어야 한다.

2014년 3월 8일 토요일

20140308 말씀 정리 & 묵상

누가복음 17장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2장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 심판을 앞에 두고 있는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렇기에 복음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살아가야 한다. 
누가복음에 대한 해석을 보면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미 천국이 임한 것이다 “라는 해석과 함께 해석할 수 있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손에 닿을만큼 가까이 임하여 있다”는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마태복음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바알세불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모습에 예수님께서는 논리적인 방법으로 반박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듯이 이미 성령에 힘입어 생활하고 있다면 분명 그 역사가 나타난다.

마태복음 13장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천국의 비유는 보화가 있는 밭을 발견하는 것과 값진 진주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취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천국을 갈망한다면 자신의 소유를 다 내어 그것을 사고자 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즉 하나님께 나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못함은 우리가 우리의 소유를 다 내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죽여야 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자신이 십자가 앞에 자신을 내어놓을 때 그 후에 사는 삶이 하나님의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 소유권이 이전되듯이 자신을 죽여 자신의 삶의 소유권을 하나님께로 이전시켜야 한다.